대호지 들녘에 선 이시경정려가 전한 고요한 충효의 울림
늦가을의 공기가 서늘하게 감돌던 날, 당진 대호지면의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 이시경정려를 찾아갔습니다. 충절과 효행을 상징하는 정려비가 남아 있는 이곳은, 한 인물의 삶을 넘어 지역의 정신이 깃든 국가유산입니다. 마을 초입에서 좁은 흙길을 따라가다 보니 낮은 언덕 위에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정려문이 단정히 서 있었습니다. 주변은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기와 위로 낙엽이 몇 장 내려앉아 있었고, 그 아래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은 현판이 보였습니다. ‘충효’ 두 글자가 정중하게 새겨진 현판을 올려다보니, 수백 년 전 마을 사람들이 느꼈을 자부심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단아하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첫인상이었습니다.
1. 정려로 향하는 길과 마을 분위기
이시경정려는 대호지면사무소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 ‘이시경정려’ 표지석이 보이고, 좁은 농로를 따라 300미터 정도 들어가면 언덕길 끝에 정려가 자리합니다. 길가에는 감나무와 배나무가 이어져 있었고, 마을 노인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정려로 오르는 길은 완만한 흙길로, 비가 온 뒤라 약간의 진흙이 남아 있었지만 걷기에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입구에는 작은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주변의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마을이 조용해 새소리만이 또렷이 들렸습니다. 길 끝에 서 있는 정려가 햇살에 반사되어 붉은 기와빛이 따뜻하게 빛났습니다.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오래된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2. 건축 구조와 세부 형태
이시경정려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 정려문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규모로 단층 목조건물이며, 기둥 위에는 팔작지붕을 얹어 안정감이 있습니다. 붉게 칠한 기둥이 네모 반듯하게 서 있고, 위쪽에는 현판을 걸기 위한 가로목이 단단히 받쳐져 있었습니다. 중앙에는 ‘충효정려(忠孝旌閭)’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서체의 획이 굵고 힘이 있었습니다. 정려 안쪽에는 흰 돌로 된 비석이 보호각 안에 보관되어 있었고, 유리문 너머로 이시경의 행적이 새겨진 글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 담장은 낮고 간결하게 둘러져 있으며, 바닥은 잔돌로 고르게 다져져 있었습니다. 햇살이 비칠 때마다 기와지붕의 곡선이 은근히 빛을 받아 고요한 아름다움을 자아냈습니다.
3. 정려가 세워진 배경과 역사적 의미
이시경정려는 조선 후기 효성과 충의로 이름을 남긴 이시경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나라의 위기에도 절개를 지켰고, 부모에 대한 효행이 지극해 왕으로부터 정려를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정려(旌閭)’란 충신, 효자, 열녀 등 유교적 덕목을 실천한 인물을 표창하기 위해 세운 문을 말합니다. 이곳의 정려문은 그 중에서도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당시 지방 사회에서 충효 사상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안내문에는 “마을 사람들은 매년 봄, 정려 앞에서 고인의 뜻을 되새기며 예를 올린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지역의 정신적 중심으로 이어져 온 공간이었습니다.
4. 주변 관리 상태와 공간의 인상
정려 주변은 정갈하게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입구에는 간단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QR코드를 통해 유래와 관련 문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당의 풀은 깔끔하게 베어져 있었고, 비석 앞에는 낙엽 하나 없이 단정했습니다. 방문객을 위한 벤치가 한쪽에 놓여 있었으며, 잠시 앉아 들판 너머로 이어진 산맥을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관리가 주민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듯, 공간 곳곳에서 정성과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정려문 위의 풍경이 가볍게 울리며 맑은 소리를 냈고, 그 소리가 들판 끝까지 퍼져나갔습니다. 화려한 시설은 없었지만, 시간의 결이 고요히 스며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5. 함께 둘러보기 좋은 인근 명소
이시경정려를 둘러본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대호방조제나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을 함께 방문하면 좋습니다. 두 곳 모두 당진의 지역문화를 느낄 수 있는 명소입니다. 특히 대호방조제는 석양 무렵 붉게 물드는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정려의 고즈넉함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또한 인근 ‘대호호전망대’에서는 탁 트인 수면 위로 바람이 불어와 상쾌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대호지면 중심가의 ‘두메산골밥상’에서 시골식 백반을 맛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습니다. 역사와 자연,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정이 되었습니다. 들판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정려가 서 있는 풍경을 되새기니, 마음이 한결 맑아졌습니다.
6. 방문 팁과 유의사항
이시경정려는 외부 관람이 가능하지만, 비석 보호를 위해 내부 출입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유리문을 통해 내용을 볼 수 있으므로 손대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비가 온 뒤에는 주변 길이 미끄러워 신발 선택에 유의해야 하며, 여름철에는 풀벌레가 많아 긴바지를 입는 것이 좋습니다. 관람 시간은 자유롭지만, 해가 지면 가로등이 없어 오후 늦게 방문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봄과 가을에는 햇살의 각도가 낮아 사진 촬영 시 현판의 글씨가 선명하게 잡힙니다. 입장료는 없으며, 관리인은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며 정기적으로 점검한다고 합니다. 조용히 방문해 천천히 살피면 정려가 전하는 품격과 절제가 자연스레 전해집니다.
마무리
이시경정려는 화려한 기념비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작은 문 하나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도리와 절개가 오랜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붉은 기와와 바람에 스치는 풍경, 그리고 담장 너머로 보이는 들판의 여백이 조화를 이루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했습니다. 정려 앞에 서니 스스로 마음을 다잡게 되었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장소였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심이 깃든 공간, 이시경정려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빛나는 유산이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봄날에 찾아, 연초록 들판 속 붉은 지붕이 돋보이는 그 풍경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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