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금사 기천서원지에서 만나는 사라진 서원의 고요와 향기
가을볕이 따뜻하게 내리던 오후, 여주 금사면에 자리한 기천서원지를 찾았습니다. 예전부터 서원의 흔적이 남은 터라 하여 궁금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작은 개울을 건너면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나옵니다. 길 양옆으로는 억새와 들국화가 피어 있었고, 흙길 위로 낙엽이 얇게 쌓여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들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돌기단의 흔적과 낮은 담장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 서니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감돌았습니다. 서원은 사라졌지만, 바람결에 스며든 학문의 향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한때 선비들이 모여 글을 읽고 예를 나누었을 그 자리 위에, 지금은 풀잎이 조용히 그 흔적을 덮고 있었습니다.
1. 찾아가는 길과 주변 풍경
기천서원지는 여주 시내에서 금사면 방향으로 약 30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합니다. 국도에서 빠져나와 ‘도곡리·기천서원지’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면 됩니다. 도로 끝에는 작은 주차 공간이 있고, 서원터까지는 약 5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길은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며, 옆으로는 작은 냇물이 흐릅니다. 다리를 건너면 낮은 구릉 위로 돌담 흔적이 보입니다. 입구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서원의 위치와 배치를 설명해 줍니다. 주변은 조용한 농촌 마을로, 논과 밭이 이어져 있고 멀리 산줄기가 부드럽게 감싸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볏짚 냄새가 스며들며 한적한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가을의 노란빛 들판과 옛 서원터의 풍경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2. 서원터의 배치와 남은 흔적
서원터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낮게 남은 기단석입니다. 예전에는 강당과 동재·서재가 있었던 자리라 합니다. 돌이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어 당시 건축의 질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일부 주춧돌 위에는 풀과 이끼가 자라,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원 뒤편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 있어 그늘을 드리우고, 마당터에는 잡풀이 가지런히 자라 있습니다.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공간의 구획이 또렷이 남아 있어 마치 옛 서원의 형태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해가 기울며 석양이 기단 위로 비칠 때,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돌들이 따뜻한 빛을 머금었습니다. 조용히 둘러보는 동안 들리는 것은 바람소리뿐이었습니다.
3. 서원의 역사와 학문의 흔적
기천서원은 조선 중기 지역 유학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후학들의 학문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인근 금사 지역의 학자들이 모여 경전을 강독하고 의례를 익혔다고 합니다. 서원이 훼철된 후에도 그 자리는 유림들에 의해 꾸준히 관리되었고, 지금의 서원지는 그 역사를 증언하는 흔적이 되었습니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건물은 남지 않았지만, 서원터의 배치와 석재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실제로 그 자리에 서면, 단정하고 질서 있는 공간 구성이 느껴집니다. 기단의 높낮이, 돌의 배열, 서쪽을 향한 방향성까지 모든 것이 학문의 단아함을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사라진 건물보다도 공간이 가진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4. 현장의 관리와 편의
기천서원지에는 안내문과 문화재 표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주변 잔디는 정기적으로 정리되어 있어 깔끔했습니다. 작은 벤치가 두어 개 놓여 있고, 그늘 아래에서 잠시 앉아 주변을 둘러보기 좋습니다. 화장실과 음수대는 입구 주차장 쪽에 있으며, 서원터까지는 짧은 산책 코스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서원의 설립 연도, 주요 인물, 구조 배치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계절마다 시에서 관리 인원이 방문해 환경 정비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별다른 시설이 없지만, 공간 자체가 정돈되어 있어 방문객이 머물기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조용히 머물며 사색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습니다. 관리의 손길이 과하지 않아 오히려 자연스러웠습니다.
5. 인근에서 함께 둘러볼 곳
기천서원지에서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도곡리 석불좌상’이 있습니다. 같은 시대의 유산으로, 서원의 정신과 불교적 미소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줍니다. 또 근처 금사저수지 둘레길은 산책하기에 좋습니다. 들꽃이 피는 계절에는 물가를 따라 걷는 재미가 있습니다. 점심은 인근 ‘금사토속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된장국과 제철 나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여주 시내로 이동해 ‘명성황후 생가’나 ‘여주곤충생태관’을 함께 방문하는 것도 좋습니다. 짧은 여정이지만 지역의 역사와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코스로 연결됩니다. 길마다 들꽃 향이 은은하게 남아 하루의 피로가 잦아들었습니다.
6. 방문 시 팁과 계절별 인상
서원지는 사계절 모두 다른 느낌을 줍니다. 봄에는 유채꽃이 들판에 피어나고, 여름에는 초록빛 그늘 아래에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옵니다. 가을에는 억새가 서원터를 부드럽게 감싸고, 겨울에는 눈이 내려 돌기단이 하얗게 덮입니다. 오전 시간대에는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와 사진이 가장 아름답게 나옵니다. 비가 온 뒤에는 돌기단의 색이 짙어져 세월의 질감이 더욱 뚜렷이 드러납니다. 신발은 운동화나 트레킹화를 추천하며, 여름에는 모자와 물을 챙기면 좋습니다. 방문 시에는 돌 위에 올라서거나 기단석을 옮기는 행위는 삼가야 합니다. 조용히 걷고 머물며 공간이 전하는 온도를 느껴본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체험이 됩니다.
마무리
기천서원지는 화려한 건물 대신, 사라진 시간의 자취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취 속에는 여전히 단정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들꽃 향과 흙냄새, 바람의 흐름이 어우러져 서원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오래된 돌 하나에도 누군가의 뜻이 스며 있고, 그 뜻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한참을 서성이다가, 마지막에 기단 위로 떨어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기천서원지는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여운을 남기는 공간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봄의 새싹이 돋을 때 다시 찾아, 이 터가 품은 고요한 생명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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